형사 사건은 무혐의 처분 또는 무죄를 선고받지 않는 한, 결국 ‘처벌’이 얼마만큼 이루어지느냐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법에는 무죄와 유죄 그 사이의 제3의 공간이 있습니다.
기소유예, 선고유예, 집행유예 등 각종 ‘유예’ 제도가 바로 그것인데요.
흔히 언론에서 회자되는 사건에서 피고인이 ‘유죄’ 선고를 받으면서 ‘집행유예’를 받았다는 뉴스 많이 들어보셨을 것 같습니다.
즉 법원이 피고인에게 유죄를 선고하면서도, 동시에 선고된 형을 집행하지 않는다는 말인데요. 이런 경우 판결의 주문에 “피고인을 징역 1년에 처한다. 다만 이 판결 확정일부터 2년간 위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와 같은 문구가 기재됩니다.
그러나 집행을 유예한다 하더라도 형을 선고받은 사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나 저러나 해당 범죄사실로 재판을 받았다는 전과 기록은 남아 있게 되는 것이죠. 「형의 실효 등에 관한 법률」 제2조 제5호 가목에서는 ‘벌금 이상의 형의 선고, 면제 및 선고유예’를 ‘범죄경력자료’, 즉 전과 기록으로 남게 되는 것임을 명백히 규정하고 있습니다. 집행유예도 징역형의 일종이므로 벌금형보다 중한 처벌인 징역형이 전과 기록에 남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것입니다.
반면 ‘기소유예’는 불기소처분의 일종으로 사건이 재판까지 가지 않고 마무리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때 ‘범죄경력자료’, 즉 일반적으로 말하는 전과 기록이 남지 않습니다.
기소유예는 상대적으로 죄질이 중하지 않다거나, 당사자간 합의가 성립하여 피의자를 재판으로 의율하기 부적당한 경우 등 검사의 ‘기소편의주의’에 따른 재량으로 선처를 해주는 제도입니다.
다만 기소유예 처분은 전적으로 담당 검사의 재량에 따르므로, 하루 하루가 불안한 피의자 입장에서는 대책없이 마냥 기소유예 처분이 내려지기를 기다릴 수 없습니다. 물론 피해자가 있는 범죄에서 합의가 조기에 이루어진다면 좋겠지만 모든 사건에서 합의가 적절한 시기에 원만하게 이루어진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경우에 기소유예 처분을 받을 수 있고, 또 어떻게 해야 기소유예 처분 확률을 높일 수가 있을까요?
‘형사조정’이라는 제도가 위와 같은 질문에 대한 어느 정도 해답이 될 수 있겠습니다.
대검찰청예규 형사조정 실무운용 지침에서 규정하는 형사조정 대상 사건들은 예시로, 가령 폭행, 협박, 주거침입, 상해와 같은 신체, 자유, 사생활의 평온이라는 다소 상이한 법익이 문제되는 사건에 있어서도 형사 조정으로 합의를 시도해볼 수 있습니다.
특히 폭행, 협박, 상해와 같은 사건은 일단 사건이 발생하면, 당장 피해자 입장에서는 화가 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가해자 입장에서는 합의는커녕 바로 연락을 시도하기조차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가까스로 피해자와 연락이 된다 하더라도 터무니없는 손해배상이나 합의금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사건을 그대로 방치해버리면 일단 사건 자체는 복잡하지 않은 경우가 대다수라 경찰 조사 후 사건이 빠르게 검찰로 송치된 후 바로 기소되어 벌금형이나 징역형과 같은 실형 선고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기 때문에 최대한 시간을 두고 대화와 타협을 시도해볼 공간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럴 때 사건을 형사 조정 절차로 회부할 것을 요청하면, 자연히 가해자 입장에서는 피해자와 합의에 이를 기회가 한 번이라도 더 생기는 것이고, 양 당사자 모두 사건이 발생했을 때보다 침착하게 대화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사건이 원만하게 해결될 가능성도 높아지게 됩니다.
모든 범죄를 다 처벌하는 것이 능사는 아닙니다. 그렇기에 형사 조정이라는 제도가 존재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 합의에 이를 경우 가해자는 관련 규정에 따라 공소권없음 또는 기소유예와 같은 불기소처분을 받게 되어 불필요하게 전과 기록이 남는 것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혹자는 ‘용서는 인간으로서 행할 수 있는 가장 고차원적인 범주의 행동’이라고도 하였습니다. 피해자의 입장에서도 죄를 뉘우치고 반성하는 가해자를 용서함으로서 스스로 본인의 자존감과 명예를 지킬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단 한 순간의 우발적인 잘못으로 피의자 신분이 되어버렸을 때 어떻게든 빨리 피해자와 합의해서 이 순간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 뿐일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좋은 방법은 변호사를 통해 법률적인 조언을 구하고 지침에 따라 행동하는 것입이다. 가해자와 피해자 양 당사자 모두 만족에 이를 수 있는 결론이 내려진다면 사적인 분쟁을 떠나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도 분명 바람직한 일일 것이기 때문이지요.